서론: 저무는 ‘악바리’의 시대
한때 KBO 리그를 대표하는 ‘악바리’이자 꾸준함의 대명사였던 사나이, 손아섭. 그의 야구 인생 최종 목표는 단 하나,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통산 3000안타라는 위대한 금자탑이었습니다. 2007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이래 매 시즌 쉼 없이 안타를 생산해내며 대기록을 향해 질주하던 그의 모습은 많은 팬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2026년 9월, 37세의 베테랑이 마주한 현실은 차갑고 혹독하기만 합니다. 화려했던 영광의 시간은 뒤로한 채, 그는 지금 선수 생활의 가장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때 리그를 호령했던 그의 방망이는 힘을 잃었고,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이제 다른 곳을 비추고 있습니다.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고 재기를 노렸지만,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채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손아섭. 그의 쓸쓸한 황혼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추락의 시작, 1년 1억 계약의 현실
손아섭의 시련은 지난해인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NC 다이노스와의 FA 계약 마지막 해, 시즌 후반 그는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지명타자에 국한되었고, 예전과 같은 날카로움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시즌 후 야심 차게 FA 권리를 행사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그 어떤 구단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고, 결국 그는 원소속팀이었던 한화와 1년 총액 1억 원이라는, 그의 이름값에 비하면 너무나도 초라한 조건에 계약하며 자존심을 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베테랑들의 대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손아섭보다 한 살 많은 김현수(37)는 KT 위즈와 3년 50억 원에 계약했고, 무려 여섯 살이나 많은 최형우(43)는 KIA 타이거즈와 2년 26억 원에 잔류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손아섭의 현재 가치가 KBO 리그에서 어느 정도로 평가받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뼈아픈 대목이었습니다. 한때 100억 FA 시대를 열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그에게 1억 원의 계약은 단순한 금액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 즉 ‘이제는 주역이 아니다’라는 냉정한 선고와도 같았습니다.
두산에서의 마지막 기회, 그러나…
절치부심하며 맞이한 2026시즌. 손아섭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습니다. 시즌 초, 그는 왼손 투수 이교훈과 유니폼을 맞바꿔 입으며 두산 베어스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KBO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에서의 재기는 그에게 마지막 동기부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두산에서의 생활 역시 순탄치 않았고, 지난해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올 시즌 그의 성적은 45경기 출전, 타율 0.241, 35안타에 그쳤습니다. 한 시즌 150안타는 기본으로 여겨졌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결국 지난 7월 31일, 그는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이후 팬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가고 있습니다. 1군에서 그의 소식은 완전히 끊겼고, ‘감감무소식’이라는 표현이 지금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리라 기대했던 두산에서의 도전은 이대로 허무하게 막을 내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멀어지는 대기록과 앞서가는 경쟁자들
손아섭이 2군에서 재활과 훈련에 매달리는 사이, 그가 평생을 쫓았던 통산 최다 안타 기록 경쟁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올 시즌 경이로운 타격감을 뽐내며 회춘한 삼성 라이온즈의 최형우가 손아섭을 추월해 통산 최다 안타 1위로 올라섰습니다.
현시점 통산 안타 순위 (2026년 9월 2일 기준)

- 1위: 최형우 (삼성) – 2717안타
- 2위: 김현수 (KT) – 2657안타
- 3위: 손아섭 (두산) – 2653안타
한때 가장 유력한 1위 후보였던 손아섭은 이제 3위로 밀려났습니다. 더욱 뼈아픈 것은, 그보다 데뷔가 늦거나(김현수 2006년, 손아섭 2007년) 나이가 훨씬 많은(최형우 2002년 데뷔) 선배들이 여전히 1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왜 김현수와 최형우는 되는데, 손아섭은 안 되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경쟁력’에 있습니다. 김현수는 올해 외야수에서 1루수로 성공적으로 변신하며 수비 부담을 줄이고 공격에 집중, 0.275의 타율과 75타점을 기록하며 KT의 중심 타선을 이끌고 있습니다. 최형우는 비록 수비 능력은 떨어졌지만, 0.322의 고타율과 16홈런, 93타점으로 여전히 리그 최상급의 공격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팀이 필요로 하는 확실한 강점을 유지했습니다. 반면 손아섭은 공격, 수비, 주루 어느 것 하나 후배들과의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사라진 3툴, 은퇴의 기로에 서다
과거의 손아섭은 정교한 타격, 준수한 주력, 그리고 투지 넘치는 수비를 겸비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은 그의 무기들을 하나씩 앗아갔습니다. 통산 232도루를 기록했던 준족의 모습은 몇 해 전 입은 무릎 부상 이후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홈런 역시 2020년 11개를 기록한 것이 마지막 두 자릿수 홈런일 정도로 장타력이 급감했습니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정교함’의 실종입니다. 2할대 초반의 타율은 더 이상 그가 1군 주전 선수로 뛰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정교함도, 파워도, 주력도 모두 예전 같지 않은 지금, 그가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은 희미해졌습니다. 입단 동기이자 친구인 KIA 타이거즈의 양현종이 여전히 에이스로 활약하는 모습과 비교하면 그의 현재는 더욱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이대로라면 올 시즌 후 두산과의 작별은 기정사실로 보입니다. 방출의 칼바람을 피하기 어려워 보이며, 이미 그의 손을 놓았던 NC와 한화는 물론 다른 팀들 역시 마흔을 바라보는 노장 선수에게 손을 내밀 확률은 지극히 낮습니다.
결론: 명예를 지키는 길
KBO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위대한 타자 손아섭은 이제 선수 생활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 섰습니다. 3000안타의 꿈은 현실적으로 멀어졌고, 그를 위한 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팬들은 그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끊임없이 안타를 생산해내던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제는 그 뜨거웠던 기억을 아름답게 간직한 채, 스스로 명예를 지키는 길을 선택해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악바리’ 손아섭의 마지막 선택에 야구팬들의 시선이 조용히 모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