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의 준우승, 그러나 박수보다 거셌던 비판
2025년, 한화 이글스는 KBO 리그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무려 19년 만의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신인이던 2006년 이후 처음으로 밟아본 가을야구의 가장 높은 무대였습니다. 2024년 8위에 머물렀던 팀이 단 1년 만에 2위로 수직 상승한 것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한 성과였습니다. ‘우승 청부사’ 김경문 감독의 지도력 아래 독수리 군단은 마침내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짧았습니다. 한국시리즈 종료 후, 한화와 김경문 감독을 향한 시선은 축하와 격려보다는 차가운 비판과 질책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26년 만의 우승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쳤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팬들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감 역시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전드의 뼈아픈 일침: “우승 찬스를 놓쳤다”

비판의 선봉에 선 인물은 다름 아닌 한화의 레전드 출신, 강정길 TJB 해설위원이었습니다. 80~90년대 빙그레 이글스 시절 ‘독수리 돌풍’의 주역이었던 그는 누구보다 팀에 대한 애정이 깊었기에, 그의 직격탄은 더욱 뼈아팠습니다.

강 위원은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아쉬운 시리즈였다. 26년 만에 우승할 찬스를 놓쳤다”고 탄식하며, “좋은 선수가 있을 때 우승했어야 하는데, 언제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좋은 선수’란 지난해 각각 17승과 16승을 합작하며 원투펀치로 맹활약했던 폰세와 와이스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두 선수는 시즌 종료 후 나란히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며 전력에 큰 공백을 남겼습니다.
그는 또한 한국시리즈 4차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김경문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을 문제 삼았습니다. 당시 4-1로 앞서던 경기는 불펜이 무너지며 4-7로 역전패했고, 이는 시리즈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강 위원은 “와이스가 9회까지 던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피드와 구종 모두 좋았다”며, “와이스 공이 너무 좋아 LG 선수들이 꼼짝도 못 했는데, 김서현이 나오니 ‘생큐’였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감독의 판단 미스가 승리를 날렸다는 의미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구단도 잘 판단해 줄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내년을 가든지 다른 결정을 내리든지 구단에서 결정하시기 바란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김경문 감독의 거취에 대한 구단의 결단을 촉구하기까지 했습니다.
김승연 회장의 선택: ‘의리’로 잠재운 경질설
레전드의 공개 비판과 들끓는 팬 여론 속에서 김경문 감독의 입지는 흔들리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한화 구단, 정확히는 김승연 회장의 선택은 ‘경질’이 아닌 ‘신뢰’였습니다.
2025년 11월 4일, 김승연 회장은 선수단 전원에게 격려의 의미로 오렌지색 최신형 휴대전화 60개를 선물했습니다. 이와 함께 전달된 메시지는 모든 논란을 한 번에 정리하는 결정타였습니다.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단의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준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이 한마디는 김경문 감독의 2026년 임기(2026년 11월 만료)를 보장하겠다는 명확한 시그널이었습니다. 평소 ‘의리’를 중시하는 김 회장의 스타일이 다시 한번 드러난 순간이었고, 경질의 기로에 섰던 김경문 감독은 극적으로 회생했습니다.
2026년의 승부수 ‘닥공’,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임기 보장이라는 든든한 뒷배를 얻은 김경문 감독은 2026 시즌을 앞두고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바로 ‘닥공(닥치고 공격)’ 야구였습니다.
메이저리그로 떠난 폰세와 와이스, 두 명의 에이스가 남긴 33승의 거대한 공백을 새로운 외국인 투수만으로 메우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대신 FA 시장에서 거물급 타자 강백호를 영입하고, 외국인 타자 페라자와 재계약하며 타선의 파괴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계산은 명확했습니다. 새로운 외국인 투수 에르난데스와 화이트가 23~24승 정도를 책임져주고, 나머지 부족한 승수는 강백호와 페라자의 방망이로 채운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야심 찬 계획은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처참하게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 투수진은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었습니다. 에르난데스는 부진 끝에 3승만을 남기고 시즌 중도에 퇴출되었고, 대체 선수로 합류한 쿠싱은 1승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는 화이트조차 9월 4일 현재 6승에 머물러 있습니다. 외국인 투수 3명이 합작한 승수가 고작 10승에 불과합니다. 아시아 쿼터로 영입한 왕옌청의 10승을 더해도, 외국인 선수들의 총 승수는 20승에 그치며 작년 폰세-와이스 듀오의 33승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입니다.

믿었던 타선 역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100억 원을 투자해 영입한 강백호는 전반기 MVP급 활약을 펼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8월 들어 타율 0.178, 4홈런, 8타점이라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습니다. 페라자 역시 2년 전과 마찬가지로 후반기 급격한 추락을 피하지 못하며 8월 타율 0.125, 2홈런, 5타점으로 침묵했습니다. 투타의 동반 부진 속에서 ‘닥공 야구’는 실종되었고, 팀 성적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감독들의 무덤, 한화의 잔혹사는 반복되는가
돌이켜보면 한화 이글스는 오랫동안 ‘감독들의 무덤’이라 불려왔습니다. 김응용(2013~2014) 감독을 시작으로 김성근(2015~2017), 한용덕(2018~2020), 수베로(2021~2023), 그리고 최원호(2023~2024) 감독에 이르기까지, 최근 10여 년간 부임한 감독 중 누구도 임기를 끝까지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습니다.

어쩌면 김승연 회장의 ‘임기 보장’ 결정은 이러한 잔혹한 역사를 끊어내고,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어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게 하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1년 만에 실패로 돌아가는 모양새입니다. 현재 한화의 성적은 잘해야 7~8위, 최악의 경우 9위까지 추락할 수 있는 위기 상황입니다.
만약 작년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김승연 회장이 휴대전화 선물과는 별개로 냉정한 결단을 내려 김경문 감독을 경질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이 팬들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19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이어진 2026 시즌마저 실패로 마감하게 된 지금, ‘의리의 야구’가 과연 정답이었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