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데 눈물이 나고, 슬픈데 웃음이 날 때
혹시 그런 순간을 겪어본 적 있나요? 분명 기쁜 순간인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너무 슬픈 상황인데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경험 말입니다. 때로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경이로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오래된 사진을 보며 아련함과 함께 낯선 기분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모호한 감정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 감정은 대체 뭐지?’, ‘나만 이런 걸 느끼나?’ 하는 생각에 외로워지기도 하죠.
이러한 혼란스럽고 이름 없는 감정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작가이자 영상 제작자인 존 케닉(John Koenig)입니다. 그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지만 언어의 한계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의 빈틈을 채우는 특별한 사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책 『슬픔에 이름 붙이기』입니다.
슬픔을 정의하다: ‘감정의 팔레트’ 프로젝트
존 케닉은 2009년,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서 ‘The Dictionary of Obscure Sorrows(모호한 슬픔들의 사전)’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이 느끼는 것 같았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포착하고, 마치 새로운 색을 만들 듯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 그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에서 영감을 받아, 기존에 없던 단어들을 만들어내며 우리 내면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그려냈죠.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것을 넘어, 설명하기 어려웠던 복잡한 감정들을 ‘한 단어’로 명쾌하게 정리하면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깊은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이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며, 지극히 보편적일 수 있다는 위로와 연결감을 선사했습니다.
몇 가지 새로운 감정의 이름들
『슬픔에 이름 붙이기』에는 어떤 감정들이 담겨 있을까요? 몇 가지 예를 살펴보면 존 케닉의 작업이 얼마나 섬세하고 창의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 소onder (손더): 스쳐 지나가는 모든 행인에게도 나 자신처럼 생생하고 복잡한 삶이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 순간. 수백만 개의 이야기가 각자의 서사를 가지고 내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경이로운 자각입니다.
- Opia (오피아): 다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때 느껴지는 모호하지만 강렬한 감정. 상대방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듯한 침입적인 느낌과 동시에, 나 자신의 내면이 노출되는 듯한 취약한 느낌이 공존하는 순간을 일컫습니다.
- Vemödalen (베뇌달렌): 세상에 이미 수천 장의 똑같은 사진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을 찍으려는 의욕이 꺾이는 미묘한 좌절감. 나의 경험이 결코 독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입니다.
이처럼 존 케닉이 만든 단어들은 우리가 어렴풋이 느껴왔지만 차마 언어로 꺼내지 못했던 감정의 조각들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우리는 왜 감정에 이름을 붙여야 할까?
그렇다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감정 라벨링(Emotional Labeling)’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정신적 활동으로,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첫째, 혼란스러운 마음에 질서를 부여합니다. 정체 모를 불안감이나 슬픔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감정은 소더구나’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안개처럼 뿌옇던 감정의 실체가 명확해지며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합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 흩어진 물건들에 이름을 붙여 정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정서적 고통을 완화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처리하는 뇌의 편도체 활동이 감소하고, 자기 통제와 관련된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즉, 감정을 언어화하는 과정 자체가 감정의 격렬함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보편적인 연결감과 위안을 줍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를 읽으며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가 느꼈던 그 이상하고 외로운 감정이 사실은 다른 많은 사람도 느끼는 보편적인 경험이라는 것을요. 이 깨달음은 ‘내가 이상한가?’라는 자기 의심에서 벗어나, ‘나는 지극히 정상이구나’라는 강한 확신과 안도감을 줍니다.
존 케닉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하지 못할 만큼 모호한 슬픔은 없습니다.”
그의 말처럼, 모든 감정은 이해받고 이름 붙여질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그 감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위한 안내서, 『슬픔에 이름 붙이기』
오늘 느낀 기분을 일기장에 옮겨 적을 때, 어떤 단어를 써야 할지 몰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나요? 혹은 친구에게 내 마음을 설명하려다 ‘그냥 좀 복잡해’라고 얼버무린 적이 있나요?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살포시 추천합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단순한 단어 모음집이 아닙니다. 이 책은 우리 각자가 자신만의 ‘감정 지도’를 그려나갈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안내서이자, 세상 모든 모호한 감정들을 위한 따뜻한 안식처입니다. 지금 마음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럽다면, 이 책과 함께 당신만의 ‘감정 라벨링’을 시작해 보세요. 당신의 내면이 한결 더 명확하고 질서정연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