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희 시 ‘미끼를 물었다’: 쇼펜하우어와 함께 읽는 삶의 사투와 시의 역할

미끼를 문 물고기, 삶의 사투를 마주하다

미끼를 문 물고기, 삶의 사투를 마주하다

아무 곳에서나 입 벌리지 마
뻐끔뻐끔
물보라가 지나갔다
파도를 타며 지느러미에 힘을 준다
줄이 끊어질 때까지
흔들리는 입에 몰두한다
제 몸의 비늘을 다 털어낼 모양새다
사투란 그런 것이다
알몸으로 날을 가는 것

  • 허은희, 「미끼를 물었다」 부분 (시집 『손톱이 자라는 속도』, 청색종이, 2025)

허은희 시인의 시 「미끼를 물었다」는 한 마리 물고기의 처절한 몸부림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낚싯바늘이라는 치명적인 미끼를 문 물고기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집니다. 시인은 이 모습을 ‘사투(死鬪)’라고 명명합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일상을 ‘사투’라고 부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요? 사투란 단순히 죽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죽을힘’을 다해 살고자 하는 맹렬한 의지의 표출입니다. 시 속 물고기는 줄이 끊어질 때까지, 제 몸의 비늘이 다 털려나갈 때까지 저항합니다. 그 행위의 목적은 죽음이 아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 그 자체입니다. 이 처절한 몸부림은 우리에게 삶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잘못된 선택의 굴레: 쇼펜하우어의 '삶에의 의지'

잘못된 선택의 굴레: 쇼펜하우어의 ‘삶에의 의지’

그런데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해야 합니다. 물고기는 왜 애초에 이 고통스러운 사투를 벌여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을까요? 바로 스스로 ‘미끼를 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외부의 강압이 아닌, 자신의 선택이 초래한 비극입니다. 어째서 물고기는 그 위험한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것일까요? 생각이 짧아서였을까요, 아니면 순간의 욕심을 이기지 못해서였을까요?

이 물고기의 모습은 놀랍도록 우리 인간의 삶과 닮아있습니다. 우리 역시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명백히 잘못된 선택임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고통의 굴레에 빠지곤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깊은 통찰을 제시합니다. 그는 모든 고통의 근원을 ‘삶에의 의지(Wille zum Leben)’라고 보았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삶에의 의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맹목성: 이성적인 계획이나 합리적 판단이 아닌, 그저 살고 번식하려는 거대한 생명 에너지입니다.
  • 불만족: 이 의지는 결코 만족을 모르며,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즉시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내 우리를 끊임없이 채찍질합니다.
  • 고통의 근원: 우리는 스스로 현명하게 판단하고 선택한다고 믿지만, 실은 이 눈먼 의지의 노예가 되어 욕망을 좇다가 결국 고통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물고기가 미끼를 문 행위는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가 부른 필연적 결과입니다. 우리 인간이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사지(死地)로 몰아넣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적인 인간론은 때로 우리 삶의 어두운 단면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듯하여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고통을 번역하는 언어: 시(詩)라는 오답 노트

고통을 번역하는 언어: 시(詩)라는 오답 노트

그렇다면 인간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그저 맹목적인 의지의 노예로 살다 고통 속에 스러져야 하는 존재일까요? 만약 그랬다면 인류의 문명과 예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수정하고 되돌리려 애쓰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실패와 고통의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이러한 배움의 과정에서 인류는 ‘삶의 매뉴얼’을 만들어왔습니다. 이 매뉴얼은 때로는 규범이나 문화의 형태로, 때로는 예술이나 기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근원적이고 아름다운 매뉴얼이 바로 ‘시(詩)’일 것입니다. 시는 단순한 감정의 나열이 아니라, 고통의 궤적을 기록하고 공유함으로써 우리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지침서의 역할을 합니다.

허은희 시인의 시 「미끼를 물었다」는 바로 이 지점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시 속에서 물고기가 비늘을 털어내는 사투는 단순한 생존 본능을 넘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남긴 상흔조차 삶의 무늬로 바꾸어내려는 의지적인 학습 과정으로 승화됩니다. 시인은 바늘이 혈관을 지나가며 남긴 그 끔찍한 통증을 아름다운 언어로 번역해 우리 앞에 내놓습니다. 그렇게 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아름다운 오답 노트’가 됩니다.

다시, 인간을 위한 지침서를 읽으며

다시, 인간을 위한 지침서를 읽으며

결론적으로, 허은희 시인의 「미끼를 물었다」는 한 생명의 처절한 사투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딜레마를 탐구합니다. 우리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삶에의 의지’라는 굴레 속에서 끊임없이 잘못된 미끼를 물고 고통받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 고통을 언어로 기록하고 성찰하며 ‘삶의 매뉴얼’을 써 내려가는 위대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시는 바로 그 매뉴얼의 가장 빛나는 첫 페이지입니다. 이 시를 읽는 것은, 바늘이 남긴 통증을 통해 우리가 다시는 ‘아무 곳에서나 입 벌리지 않는’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성찰의 과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