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헌 시인의 「자살 숲」: 죽음을 마주하며 삶을 노래하다

서문: 충격적인 제목, 그 너머의 진실

서문: 충격적인 제목, 그 너머의 진실

주영헌 시인의 시 「자살 숲」. 제목만 들으면 섬뜩하고 어두운 감정이 먼저 고개를 듭니다. 일본에 있다는, 모든 통신과 방향 감각이 무력해지는 그곳. 세상으로부터 완벽히 고립되어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시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 시는 단순히 죽음을 미화하거나 권유하는 작품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고 싶다는 생각조차 금기시되는 사회 속에서, 가장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자, 역설적으로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영헌 시인의 시 「자살 숲」을 깊이 들여다보며, 곧 출간될 그의 세 번째 시집 『인류는 멸종을 예약했습니다』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를 함께 탐색해보고자 합니다.

시 「자살 숲」: 절망의 끝에서 마주한 나 자신

시 「자살 숲」: 절망의 끝에서 마주한 나 자신

먼저, 문제의 시를 온전히 감상해 보겠습니다.

자살 숲 / 주영헌

일본에는 자살 숲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핸드폰도 나침판도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뒷산을 걸으면서 자살 숲을 생각한다.
저기 적당한 나무,
튼튼한 줄 하나 걸기에 충분하다.
적당한 가지 하나를 골라 줄을 걸고 매듭을 매면 끝
어떤 생의 방법론이 저렇게 명료할 수 있을까.

지금껏 나는,
삶의 거미줄에 얽혀서도 날아오르는 것만을 생각하는 곤충처럼
부단한 날갯짓으로 살았던 것이다.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라는 도덕적인 세뇌

내 속의 진심을 훔쳐보는 것보다 무서운 것이 있을까.

뒷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매일 목을 맨다.
내 얼굴을 닮은 수십 개의 허깨비가 줄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시는 ‘자살 숲’이라는 극단적인 공간을 설정하며 시작됩니다. 핸드폰도, 나침반도 무용지물이 되는 곳. 이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연결망과 소음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화자는 그곳에서 비로소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상태를 갈망합니다. 뒷산을 오르며 그는 구체적으로 죽음의 방법을 떠올립니다. ‘적당한 나무’, ‘튼튼한 줄’, ‘명료한 방법론’. 이 과정은 삶의 복잡함과 대비되며 섬뜩할 정도로 단순하게 묘사됩니다.

하지만 시의 핵심은 후반부에 있습니다. 화자는 “삶의 거미줄에 얽혀서도 날아오르는 것만을 생각하는 곤충”처럼,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라는 사회적 세뇌 속에서 부단히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러한 삶 속에서 그는 자신의 ‘진심’, 즉 죽고 싶을 만큼 힘든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시는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합니다. “뒷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매일 목을 맨다.” 그러나 줄에 매달리는 것은 실제의 ‘나’가 아닙니다. 바로 “내 얼굴을 닮은 수십 개의 허깨비”입니다. 이는 절망하고, 포기하고 싶어 하는 자기 자신의 분신들을 매일같이 죽이는 상징적인 행위입니다. 가장 어두운 나를 죽임으로써, 역설적으로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결국 「자살 숲」은 죽음의 공간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절망을 끌어안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재생’과 ‘정화’의 공간으로 재탄생합니다.

시인 주영헌: 직장인, 세 딸의 아버지, 그리고 시인

시인 주영헌: 직장인, 세 딸의 아버지, 그리고 시인

이처럼 깊이 있는 사유를 담아낸 주영헌 시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2009년 등단 이후, 두 권의 시집을 발간한 중견 시인입니다.

  • 2016년: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
  • 2020년: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5~6년에 한 권씩, 어찌 보면 더딘 걸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시인 스스로도 3년 주기로 시집을 내는 부지런한 시인들에 비해 게으른 편이었다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세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있었습니다. 시에 온전히 몰입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의 정리’가 쉽지 않았던 환경 속에서도 그는 꾸준히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시집 『인류는 멸종을 예약했습니다』의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등단 후 잊히는 시인들이 많은 현실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하며 세 번째 결실을 맺는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시 쓰기에 매달려 왔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개인의 패배에서 일상의 연대로: 새 시집의 서사

개인의 패배에서 일상의 연대로: 새 시집의 서사

새 시집 『인류는 멸종을 예약했습니다』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시인은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서사로 ‘개인의 패배 -> 사회적인 폭력 -> 일상의 연대’라는 흐름을 제시합니다.

패배와 폭력의 직시

「자살 숲」은 이 서사의 첫 단계인 ‘개인의 패배’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압박과 내면의 고통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개인의 모습을 정직하게 그려냅니다. 시집에 함께 실릴 「안정적인 패배감」, 「구원하소서」 등의 시들도 이러한 정서적 궤를 같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패배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이 되는 사회 구조적 폭력을 응시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희망을 향한 연대의 손길

하지만 시집은 절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시인은 “죽음이나 패배가 아닌 살아있는 자리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가 시집에 강하게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패배와 사회적 폭력을 넘어, 결국 ‘일상의 연대’를 통해 구원과 희망을 찾으려는 것입니다. 「거기 사람들이」,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국수를 삶으며」 와 같은 시의 제목들에서 우리는 타인과 함께하며 상처를 보듬고 일어서려는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며칠 전 소개되었던 시 「응원」과도 맞닿아 있는 지점입니다.

모니터를 넘어, 책의 '물성'으로 만나는 시

모니터를 넘어, 책의 ‘물성’으로 만나는 시

주영헌 시인은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독자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시를 소개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블로그에서 읽은 시들을 굳이 시집으로 다시 만나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시인은 ‘그렇다’고 단호하게 답하며, 그 이유로 ‘물성(物性)’의 차이를 듭니다. 그는 이번 시집 출간을 준비하며 원고를 직접 제본해 책의 형태로 만들어보았다고 합니다.

“같은 시이지만, 모니터로 보던 시보다는 출력본으로 읽어본 시가 낫고, 출력본으로 읽어본 시보다 책처럼 만든 시가 낫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차가운 스크린의 빛을 통해 읽는 텍스트와, 손끝으로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책장을 넘기며 읽는 텍스트는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합니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모여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를 이루는 시집의 구조, 시의 배치와 호흡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책이라는 형태가 필수적입니다. 시인의 고뇌와 사유가 담긴 시집을 손에 쥐고 그 무게를 느끼며 읽을 때, 우리는 비로소 시와 온전히 교감할 수 있게 됩니다.

결론: 가장 어두운 곳에서 길어 올린 희망

결론: 가장 어두운 곳에서 길어 올린 희망

주영헌 시인의 「자살 숲」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시인은 ‘허깨비’를 목매다는 행위를 통해, 그 어둠을 회피하는 대신 끌어안고 죽임으로써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 보입니다.

곧 출간될 시집 『인류는 멸종을 예약했습니다』는 「자살 숲」에서 보여준 치열한 자기 성찰을 시작으로, 사회의 폭력을 넘어 따뜻한 연대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의 시가 당신의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 작은 위로와 단단한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니터를 넘어, 서점에서 그의 새로운 시집을 손에 들고 그 묵직한 생의 의지를 직접 느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