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은 시인의 ‘봄이 실종되었다’를 읽고: 우리가 잃어버린 봄에 대한 애가(哀歌)

봄,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계절

봄,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계절

“몇 가지 봄을 꺾어 / 냉동실에 넣어 놓을 걸 그랬나” 이희은 시인의 시 「봄이 실종되었다」의 첫 구절입니다. 길고 지루했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봄을 기다립니다. 흑백 TV가 컬러로 바뀌듯, 잿빛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물드는 그 순간을 고대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봄을 맞는 마음 한구석에는 짙은 불안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이 너무나 짧게 스쳐 지나갈 것이라는 예감, 그리고 불청객인 황사와 미세먼지가 이내 파란 하늘을 뒤덮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입니다. 이희은 시인의 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마음을 깊이 파고듭니다. 단순한 계절의 변화를 넘어,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상실의 감각을 예리하게 포착합니다. 시를 통해 우리는 왜 봄이 실종되었는지, 그리고 그 실종된 봄을 찾아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개인의 고통 속에서 사라진 봄

개인의 고통 속에서 사라진 봄

시인은 봄이 사라진 첫 번째 이유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찾습니다.

누런 공중이 꽃가루를 사정없이 뱉어내듯
고장 난 악기가 불쑥불쑥 제 몸 때리듯
기침하는 동안, 봄이 가버렸다

이 구절은 두 가지 이미지를 겹쳐 보여줍니다. 하나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꽃가루가 가득한 ‘누런 공중’이고, 다른 하나는 통제 불능의 ‘고장 난 악기’처럼 터져 나오는 기침입니다. 화자는 아픕니다. 그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증상에 집중하는 동안, 세상은 이미 계절의 전환을 끝내버렸습니다. 봄은 그의 고통을 기다려주지 않고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이는 비단 시인만의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살면서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병상에서 보내야 했던 기억이 있을지 모릅니다. 작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갑작스러운 허리 디스크로 입원과 요양을 거치는 동안 창밖의 봄은 속절없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내 몸의 통증을 다스리는 것이 온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순간, 계절의 변화와 세상의 아름다움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을 때, 봄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뒤였습니다. 시는 이처럼 개인의 고통이 어떻게 한 사람의 세계를 잠식하고, 그를 아름다운 계절로부터 완벽히 소외시키는지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황사와 기후 위기, 봄을 강탈하다

황사와 기후 위기, 봄을 강탈하다

시에서 묘사된 ‘누런 공중’은 단순히 꽃가루의 이미지를 넘어, 현대 사회가 직면한 환경 문제, 특히 황사와 미세먼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봄은 더 이상 따스하고 화사한 계절이 아닙니다. 뿌연 하늘 아래 마스크 없이는 숨쉬기조차 힘든, 어쩌면 겨울보다 더 끔찍한 계절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콜록거리며 회색빛 하늘을 원망하는 사이, 짧은 봄을 허망하게 떠나보냅니다.

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남쪽 어디에 선가는 돌풍이 불고
이제 막 만개한 봄을 말아 쥐고
지구 밖으로 던져 버렸다고 한다

폭우에 봄이 떠내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 구절들은 더 이상 시적 상상력에만 기댄 표현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매년 뉴스를 통해 접하는 기후 위기의 현실입니다. 3월 하순까지 이어지는 꽃샘추위와 때아닌 폭설, 5월부터 시작되는 폭염, 갑작스러운 돌풍과 국지성 호우는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봄은 겨울과 여름 사이에 끼어 자신의 영역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상 기후는 이제 막 피어난 꽃들을 무참히 짓밟고, 우리가 봄을 만끽할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시인은 ‘지구 밖으로 던져 버렸다’, ‘떠내려갔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통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봄이 얼마나 무력하게 사라져 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봄이 실종되었다’는 말은 더 이상 은유가 아닌, 기후 위기 시대의 명백한 사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냉동실의 '꽝꽝 얼어붙은 울음'

냉동실의 ‘꽝꽝 얼어붙은 울음’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실종된 봄을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요? 화자는 잃어버린 봄을 찾기 위해 냉동실을 뒤적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순수한 소망, “몇 가지 봄을 꺾어 / 냉동실에 넣어 놓을 걸 그랬나”라는 생각의 결과는 처참합니다. 그가 냉동실에서 발견한 것은 아름다운 봄의 박제가 아니라, ‘꽝꽝 얼어붙은 울음’뿐입니다.

잃어버린 봄 찾으려 냉동실을 뒤적여도
꽝꽝 얼어붙은 울음만
숨죽이고 있다

이 마지막 구절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상실감과 슬픔을 응축하여 보여줍니다. 냉동실의 울음은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히 소유하려 했던 욕망이 좌절된 결과물이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깊은 애도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지나간 한 철의 봄에 대한 아쉬움이 아닙니다. 건강했던 시절, 맑았던 하늘, 예측 가능했던 계절, 우리가 당연하게 누렸지만 이제는 잃어버린 모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울음입니다. 우리는 그 울음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 냉동실에서 꽝꽝 얼어붙은 채 숨죽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다가올 봄을 맞이하는 자세

그럼에도, 다가올 봄을 맞이하는 자세

시는 깊은 상실감 속에서 끝나지만, 우리의 삶은 계속됩니다. 시를 읽고 난 뒤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나간 봄을 그리워하며 ‘꽝꽝 얼어붙은 울음’만 되새기고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는 우리에게 지금, 바로 여기의 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역설적으로 일깨워줍니다.

“쓴 알약 삼키고 / 졸음에 잠겨 / 공원의 색이 바뀌는 줄도 몰랐다”는 화자의 고백처럼, 우리는 무심코 혹은 어쩔 수 없이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놓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하루하루가, 그리고 매 순간의 계절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이번 주말에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야겠습니다. 진통제가 불러오는 졸음을 잠시 이겨내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가까운 공원이라도 걸어야겠습니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고, 따스한 봄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공원의 색이 변하는 찰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써야겠습니다. 이희은 시인의 「봄이 실종되었다」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지만, 동시에 남겨진 것들을 더욱 소중히 껴안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짧고, 불안하고,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바로 오늘의 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실종된 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선의 애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