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은 제 인생에서 조금 특별한 명절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결혼하고 단 한 번도 빠짐없이 향했던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1992년부터 95년까지 공군으로 복무하던 시절을 제외하면, 실로 처음 있는 일입니다. 몸이 조금 아플 때도, 아내가 근무라 혼자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야만 했던 벅찬 순간에도, 저는 어떻게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그것이 자식 된 도리라 생각했고, 명절의 당연한 풍경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부모님께서 먼저 “오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건강을 염려하신 까닭입니다. 오랜 시간 운전대를 잡고 있기에 제 허리가 온전치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운전이라면 모를까, 모두가 아는 것처럼 명절의 귀성길은 끝을 알 수 없는 인내심의 시험대와도 같습니다.
추억과 고통이 공존하는 길, 용인에서 보은 가는 길
제 고향은 충청북도 보은입니다. 제 글을 꾸준히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익숙한 지명일 겁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이름 그대로 옛 역의 북쪽에 자리 잡은 동네입니다. 과거에는 수원과 여주를 잇던 협궤열차, 수여선이 지나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 역북동에서 보은까지의 여정은 늘 여러 선택지 앞에서 고민하게 만듭니다. 특히 명절에는 그 고민이 더욱 깊어집니다.
명절의 함정: 고속도로
보통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고속도로를 떠올릴 것입니다. 용인에서는 크게 두 개의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 경부고속도로: 대한민국의 대동맥이지만, 명절에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모합니다. 저는 보통 악명 높은 기흥 구간을 피하기 위해 서안성 요금소를 이용해 진입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명절에는 그런 작은 꾀가 무색할 만큼 도로 전체가 붉은 정체 구간으로 물들기 일쑤입니다.
* 중부고속도로: 양지 요금소를 통해 진입하는 또 다른 선택지입니다. 하지만 양지 요금소까지 가는 길 자체가 만만치 않고,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부고속도로에 합류하는 과정 또한 험난하기에 거의 선택하지 않는 경로입니다.
결국 명절의 고속도로는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만 안겨주는 선택지였습니다.
나만의 지름길: 국도
그래서 제가 명절마다 애용하는 길은 바로 국도입니다. 흔히 국도라고 하면 신호도 많고 길이 좁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제가 택하는 길의 상당 부분은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어 있어 고속도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저만의 황금 루트는 ‘양지 – 일죽 – 진천 – 증평 – 청주 – 보은’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이른 새벽에 출발하면 2시간 남짓 걸리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가장 이상적인 경우이고, 명절에는 이 길마저도 예측 불허의 상황에 놓이곤 합니다. 평소 막히지 않을 때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 30분이면 닿을 거리지만, 명절에는 거리와 시간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7시간의 사투, 명절 귀성길의 끔찍한 기억
지금까지의 귀성길 중 가장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꽉 막혔던 어느 해의 설입니다. 용인 시내를 벗어나기도 전에 차들이 거북이걸음을 시작하면,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채웁니다. 가장 심했을 때는 보은에서 용인까지 돌아오는 데 무려 일곱 시간이 걸렸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가 있어 상황이 나아졌지만, 그때는 그런 우회로조차 없었습니다. 고속도로는 당연히 마비 상태였고, 모든 차가 살길을 찾아 국도로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때문에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쑤시고 아픈 제가, 아내와 딸아이 셋을 태우고 7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시간은 그야말로 끔찍한 사투 그 자체였습니다.
아빠의 생존법: 11인승 봉고차와 간이 변기
그런 험난한 귀성길을 버텨내기 위해 저에게는 몇 가지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저는 유독 큰 차를 선호했습니다. 1종 면허를 십분 활용해 11인승 봉고차와 로디우스를 오랜 기간 운행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당시 어렸던 딸아이 셋을 한 줄에 나란히 앉히면 어김없이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빠, 언니가 나 밀었어!”, “얘가 내 자리 뺏었어!” 같은 원성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한 줄에 한 명씩, 독립된 공간을 보장해주는 것이었습니다. 11인승 차량은 그래서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필수품, 바로 캠핑용 간이 변기였습니다. 아이들은 꼭 휴게소를 막 지나친 시점에 “아빠, 화장실 가고 싶어”를 외치곤 합니다. 꽉 막힌 도로에서 다음 휴게소까지 가는 것은 고역이고, 휴게소에 진입하는 것조차 전쟁입니다. 여자아이들이라 길가에서 해결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캠핑용 간이 변기는 우리 가족의 평화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물론, 이 변기를 차에 싣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무엇을 간곡히 부탁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모두 훌쩍 자라 엄마보다 덩치가 커졌습니다. 좁은 차 한 줄에 셋을 꾸겨 넣어도 투덜거리면서도 잘 다닙니다. 그런데 왜일까요. 그토록 힘들고 지긋지긋했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추억이 된다”는 흔한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습니다.
부모님의 마음, 그리고 딸의 마음
오늘 아침, 서울에서 자취하는 큰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용인 집에는 언제 오는지 물었습니다. 딸아이는 대뜸 “이번에 시골 가?”라고 물었습니다. 큰딸은 몇 번 명절에 동행하지 않은 적이 있어도, 저는 반드시 갔으니 당연한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아빠 아파서 이번엔 못 가.” 제 대답에 딸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음… 생각해보고 연락할게”라고 말합니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였습니다.
순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는 딸이 보고 싶은데, 딸의 생각은 제 생각과 조금 다른 모양입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 부모님도 지금 저와 똑같은 마음이시겠구나. 아들이 아프다니 오지 말라고는 하셨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분명 보고 싶은 아쉬움이 자리 잡고 계실 겁니다. 그 마음을 헤아리니 죄송스러워져 요즘은 부쩍 안부 전화를 자주 드리고 있습니다.
집에서 보내는 설,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그래서 이번 설 명절은 처음으로 집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오붓하게,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며 지낼 계획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도 넉넉하게 사 두었습니다. 고향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큰 여유가 생깁니다. 이렇게 느긋하게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입니다. 물론,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불편해져 여러 번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해야 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참을 만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즐겁고 행복한 설 명절 보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향 다녀오시는 길, 막히는 도로 위에서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뻥 뚫린 길처럼 시원하게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그렇게 활짝 열리고 평안하시기를요.
시 쓰는 주영헌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