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준 시인의 ‘비처럼 오르기’ 심층 분석: 수제비와 삶, 그리고 견딤의 미학

낯섦과 변칙의 미학, 서호준의 '비처럼 오르기'

낯섦과 변칙의 미학, 서호준의 ‘비처럼 오르기’

뒷산을 오른다. 조금만 힘내면 되었다. 바지에 땀이 찬다. 수제비가 좋겠어. 개를 데리고 온 사람이 팔각정을 지나치고 개가 잠깐 멈추자 목줄이 당겨진다. 나란히 뒷산에 오르자고 했다. 뒷산이 불행해지기 전에 주머니에 손이 끝없이 들어간다. 윗니와 아래턱 사이 비좁은 틈으로개가 혀를 내민다 뒷산은 인기가 많다.

서호준, 『그해 여름 문어 모자를 다시 쓴다』, 열림원, 2026년, 17쪽

서호준 시인의 시 ‘비처럼 오르기’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낯섦’이었습니다. 시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툭, 하고 끊어지거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튀어 나가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미지는 연결되는 듯하면서도 교묘하게 서로를 비껴갑니다. 시의 첫 부분, 뒷산을 오르며 바지에 땀이 차는 묘사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독자는 화자의 숨 가쁜 호흡을 따라 함께 산을 오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화자는 불쑥 ‘수제비가 좋겠어.’ 라는 말을 던집니다. 이 문장은 앞뒤 맥락과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 보입니다. 산을 오르는 행위와 수제비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하지만 놀랍게도 이 뜬금없는 문장이 시의 핵심적인 매력을 만듭니다. 만약 이 문장이 없었다면 시는 그저 ‘땀 흘리며 뒷산을 오르는 풍경’을 묘사한 밋밋한 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변칙성은 시의 평범한 풍경에 균열을 내고, 그 틈으로 독자의 상상력이 스며들 공간을 마련합니다. 시인은 마치 문장의 빈틈을 찾아 절묘하게 메꾸는 장인과 같습니다. 물론 그 빈틈을 잘못 메꾼다면 시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 있습니다. 가령 ‘라면이 좋겠어’라거나 ‘매운탕이 좋겠어’와 같은 문장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라면’은 어딘가 일상적이고 즉흥적인 느낌을 주지만, ‘수제비’가 주는 투박하고 정감 있는 질감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수제비’라는 단어의 선택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시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합니다.

왜 하필 '수제비'였을까?

왜 하필 ‘수제비’였을까?

시의 핵심이 ‘수제비’ 그 자체는 아닐 것입니다. 화자가 오직 수제비를 먹기 위해 땀 흘려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그는 수많은 음식 중에 문득 수제비를 떠올렸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숨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수제비의 이미지를 떠올려 봅시다. 수제비는 일정한 모양이 없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뚝뚝 떼어 끓는 물에 던져 넣어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 모양은 제멋대로이고, 투박하며, 각각의 개성을 지닙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수제비를 ‘물텀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반죽을 물에 ‘텀벙텀벙’ 던져 넣는 모습에서 유래한 정겨운 표현입니다.

시인은 땀 흘리며 뒷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 수제비를 발견한 것이 아닐까요? 시의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뒷산은 인기가 많다’ 라고 말합니다. 이는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모습으로, 각자의 속도로 산을 오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저마다 다른 모양과 크기를 가진 채 뜨거운 솥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익어가는 수제비처럼, 사람들도 땀 흘리고 헉헉거리며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산을 오릅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사람들의 얼굴, 힘겹게 내쉬는 뜨거운 입김이 마치 펄펄 끓는 수제비의 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화자의 눈에는 수많은 등산객이 ‘수제비 강아지’를 데리고 산을 오르는 거대한 수제비 무리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수제비’는 개별적이면서도 군집을 이루는 존재들의 물성을 상징하는 절묘한 장치입니다.

오르기 위해 떨어지는 것, '비처럼 오르기'의 역설

오르기 위해 떨어지는 것, ‘비처럼 오르기’의 역설

이 시의 제목은 ‘비처럼 오르기’입니다. 수제비의 이미지를 이해하고 나면, 이 제목은 또 다른 수수께끼를 던집니다. 비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존재입니다. 어떻게 비가 산을 ‘오를’ 수 있을까요? 이 역설적인 제목 속에 시의 가장 깊은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화자는 ‘비’를 산을 오르는 하나의 주체로 인식합니다. 비는 정상으로 곧장 솟구치는 방식으로 오르지 않습니다.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산의 능선과 골짜기, 나뭇잎과 바위를 적십니다. 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떨어지고, 미끄러지며, 스며듭니다. 비의 오름은 상승이 아니라 하강과 확산의 과정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과 닮아있지 않을까요?

삶이란, 정상을 향해 곧장 치솟는 상승이 아니라, 비처럼 자꾸 떨어지면서도 멈추지 않는 움직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늘 앞으로, 위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수없이 미끄러지고, 예상치 못한 곳으로 스며들고, 때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목표를 향한 직선적인 전진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 머뭇거림과 방황을 모두 포함하는 총체적인 움직임이 바로 삶의 본질일 수 있습니다.

오르기란 곧 '견디는 일'

오르기란 곧 ‘견디는 일’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뒷산을 오르는 행위는 성취의 쾌감 이전에 인내와 고통을 수반하는 ‘견디는’ 행위입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가 말했듯, 우리의 삶이 강력한 의지보다는 연약한 신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과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의지로 산을 오르지만, 결국 우리를 정상으로 이끄는 것은 땀 흘리고 헉헉거리는 육체의 지난한 움직임입니다.

이 지점에서 ‘비’와 ‘수제비’의 이미지는 완벽하게 하나로 합쳐집니다. 붕어빵처럼 정해진 틀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탕 속에서 서로 부딪히고 흐트러지며 익어가는 수제비처럼, 우리의 삶 역시 계획된 설계도대로 완성되기보다 예측 불가능한 관계와 상황 속에서 흔들리며 고유의 모양을 갖추어 갑니다. 비가 떨어지고 스며들며 산 전체를 적시듯, 우리의 삶도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삶 전체를 채워나갑니다.

결국 서호준 시인이 말하는 ‘오르기’란 정상을 정복하는 행위가 아니라, 삶의 모든 과정을 묵묵히 통과해내는 ‘견디는 일’ 일지도 모릅니다. 떨어지고 미끄러지는 것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제멋대로인 수제비의 모양을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것. 서호준의 시 ‘비처럼 오르기’는 우리에게 삶을 오르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며 깊은 울림을 줍니다.

시인 소개 (출판사 제공)

  • 서호준 시인: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6년 독립 문예지 『더 멀리』를 통해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소규모 팬클럽』 『엔터 더 드래곤』이 있다. 현재 인디 게임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