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목소리, 김남주 시인의 ‘졸업반’
새해가 밝으면 문학계는 어김없이 신춘문예 당선작들로 술렁입니다. 수많은 작가 지망생의 꿈과 열정이凝集된 이 관문은 여전히 한국 문단의 가장 뜨거운 이벤트 중 하나입니다. 202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김남주 시인의 ‘졸업반’은 그중에서도 유독 서늘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이 시는 단순한 졸업을 넘어, 한 세대가 겪는 불안과 위기의식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익숙한 놀이에 빗대어 감각적으로 그려냅니다.
‘졸업반’이라는 단어는 본래 설렘과 희망,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통과 의례였습니다. 하지만 김남주 시인의 시 속에서 이 단어는 축하받는 의례가 아닌, 마치 거대한 위기를 목전에 둔 시기처럼 위태롭게 다가옵니다. 시는 우리를 나무 하나 없는 황량한 운동장으로 데려가, 끝나지 않는 놀이를 반복하게 합니다.
우리는 술에 취해 무궁화 무궁화
흙바닥에 선을 죽 그어놓고 꽃이 피었습니다
내가 술래,
무궁화는커녕 나무 하나 없는 운동장에서
너희들은 내게 다가온다 한 발 두 발
시치미를 떼며
이 기이한 놀이는 전주도 후렴도 없이, 첫 소절이 마지막 소절인 노래처럼 무한히 반복됩니다. 이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멈출 수도 없는 청춘의 교착 상태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쳐야 하지만, 그 끝이 다시 출발선이라는 절망적인 순환. 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현 세대가 느끼는 깊은 불안과 소외를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등 뒤의 서늘함: 보이지 않는 위협과 불안의 형상화
‘졸업반’의 가장 큰 특징은 논리적인 서사 대신 파편화된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병치시키는 데 있습니다. 시는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제공하기보다, 날것의 감각을 그대로 던져줍니다. 특히 ‘술래’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시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정서입니다.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
놀이는 계속되고, 술래의 등 뒤로는 정체 모를 ‘무엇인가’가 다가옵니다. 그 존재는 명확히 규정되지 않기에 더욱 큰 공포를 자아냅니다.
- 정체불명의 위협: “등 뒤의 인기척/무엇인가 오고 있다/손가락과 손가락이 끊어지는 서늘함”이라는 구절은 사회, 미래, 혹은 내면의 불안 등 구체화할 수 없는 위협이 바로 등 뒤까지 쫓아왔음을 암시합니다.
- 과장된 웃음과 숨소리: “나를 웃기기 위한 해괴한 표정과 자세 말고/뒷덜미에 울리는 숨소리/과장된 웃음소리”는 일상 속에 스며든 부조리함과 억지스러움을 표현합니다. 우리는 괜찮은 척, 즐거운 척하지만 사실은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위협의 숨소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끊임없는 경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재난 경보 문자들”은 개인의 불안을 넘어 사회 전체가 항시적인 위기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입니다. 일기예보처럼 무감각하게 재난을 읽어내는 시대, 진짜 위협은 바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선명해지는 현실 그 자체입니다.
시는 “울지 마 울지 마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모두 혼내주자 그게 설령 우리를 낳아준 사람이라도”라고 말하며, 이 불안의 근원이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깨끗해서 외로운 도시 속에서 청춘은 기댈 곳 없이 출발선을 향해 달려야만 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신춘문예의 새로운 기준: ‘완성된 시인’을 찾다
김남주 시인의 ‘졸업반’이 2026년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선택된 것은 최근 문학계의 변화하는 흐름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과거 신춘문예가 ‘기본에 충실한 시’, 즉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신인을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그 기준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최근의 경향은 기본기를 넘어, 자신만의 특별한 감각과 목소리로 동시대의 사회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시를 선호합니다. ‘졸업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시인 개인의 경험을 넘어, 한 세대가 공유하는 ‘모호한 희망’과 불안을 감각적인 언어로 완벽하게 구현해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기업이 잠재력 있는 신입사원보다 당장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경력 같은 신입’을 선호하는 현상과도 닮아 있습니다.
신춘문예는 이제 풋풋한 가능성보다는 ‘이미 완성된 시인’을 발굴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기록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듯합니다. 이런 변화는 시가 더 이상 개인의 서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적극적으로 호흡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와 시대를 읽는다는 것
김남주 시인의 ‘졸업반’은 한 편의 시를 넘어,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끝나지 않는 놀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으며, 우리가 돌아가야 할 출발선은 과연 어디인지 묻고 있습니다. 시 속에서 반복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구호는 희망의 주문이라기보다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확인시키는 서늘한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이 시가 담긴 『2026 신춘문예 당선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을 넘어, 우리 시대의 가장 예민한 감각들이 포착해낸 사회의 풍경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졸업반’이 그려내는 위태로운 청춘의 초상은, 비단 특정 세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수 있습니다. 이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시를 통해, 보이지 않는 위협과 마주하며 달려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