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넘어 다시 만난 대서사시, ‘일리아스’
드디어 700페이지가 넘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를 다시 한번 완독했습니다. 약 10년 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한데, 두 번째 읽는 고전 책 읽기 일리아스는 또 다른 깊이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고전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번 읽고 꽂아두는 책이 아니라, 삶의 어느 길목에서 문득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 읽을 때마다 나의 경험과 연륜이 더해져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책. 이것이 바로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은 고전의 힘일 것입니다.
두껍고 때로는 어렵게 느껴지는 고전을 다시 손에 드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 안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삶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일리아스’는 단순한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분노, 명예, 슬픔, 사랑, 복수 그리고 용서라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들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거대한 드라마입니다. 이 장대한 서사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게 됩니다.
‘일리아스’의 심장: 적의 발 앞에 무릎 꿇은 아버지, 프리아모스
‘일리아스’의 수많은 장면 중에서도 가장 가슴을 울리는 대목은 단연 트로이아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아카이오이족의 진영으로, 아들을 죽인 원수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는 장면일 것입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일리아스’가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선 위대한 문학 작품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분노의 화신, 아킬레우스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이성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는 헥토르를 죽인 것도 모자라, 그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며 모욕하는 잔인함을 보입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죽은 자에 대한 예우를 완전히 짓밟는 행위였습니다. 신들조차 아킬레우스의 도를 넘은 분노를 우려할 정도였죠.
아버지의 위대한 여정
바로 그 분노의 화신 앞에, 헥토르의 아버지인 프리아모스가 혈혈단신으로 나타납니다. 신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적진에 잠입한 그는 아킬레우스를 발견하자마자 그의 발 앞에 엎드려 무릎을 잡고, 아들을 죽인 그 손에 입을 맞춥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굴욕이지만, 그는 오직 아들의 시신을 되찾겠다는 일념뿐입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접어든 그대 아버지를… (중략)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아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들을 낳았건만 그중 한 명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오… (중략) 나는 세상 어떤 사람도 차마 못 할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프리아모스의 이 절절한 호소는 얼음 같던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녹입니다. 그는 프리아모스의 모습에서 멀리 고향에 있는 자신의 늙은 아버지 펠레우스를 떠올립니다. 적장과 적국의 왕이라는 관계를 넘어, 아들을 잃은 아버지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로서 서로의 슬픔에 공감하게 된 것입니다. 둘은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프리아모스는 헥토르를 위해,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아버지와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울었습니다. 이 순간, 전쟁의 광기와 잔혹함은 잠시 멈추고 인간적인 연민과 슬픔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가치와 교훈
이 장면은 왜 고전 책 읽기 일리아스가 현대인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는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 담긴 가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 자식을 향한 부모의 무한한 사랑: 프리아모스의 행동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굴욕도 감수할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입니다.
- 공감을 통한 인간성의 회복: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슬픔에 공감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잔인한 분노에서 벗어나 인간성을 회복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 죽음에 대한 존엄성: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요청을 받아들여 헥토르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11일간의 휴전을 약속합니다. 이는 적이라 할지라도 죽은 자에 대한 예우와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임을 말해줍니다.
- 전쟁의 비극과 화해의 가능성: 이들의 만남은 끊임없는 복수와 증오로 점철된 전쟁 속에서도,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잠시나마 평화와 화해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일리아스’를 덮으며: 삶의 나침반이 되는 고전
결국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정중하게 내어주고, 트로이아인들은 영웅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릅니다. 프리아모스의 용기와 아킬레우스의 연민이 만들어낸 이 짧은 평화의 순간은 ‘일리아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장면으로 기억됩니다.
고전 책 읽기 일리아스는 우리에게 인생은 돌고 돌며,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불렀고, 이는 다시 헥토르의 죽음으로, 그리고 결국 아킬레우스 자신의 죽음으로 이어집니다. 이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오늘을 잘 살아야 하는 이유, 타인에 대한 존중과 공감이 왜 중요한지를 배우게 됩니다. 한 권의 고전이 이토록 많은 깨달음과 성찰의 기회를 준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아직 ‘일리아스’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깊은 울림이야말로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