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다시 만난 대서사시, ‘일리아스’
드디어 700페이지가 넘는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를 완독했습니다. 약 10년 전 처음 이 위대한 이야기를 접한 후, 두 번째로 마주한 여정이었습니다.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을 비교하며 읽는 시간은 더욱 깊고 풍성한 의미를 더해주었습니다. 첫 독서의 감동이 세월의 먼지 속에 희미해졌을까 우려했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밀려오는 묵직한 감동은 여전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삶의 연륜이 더해진 만큼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전 책 읽기의 진정한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고전은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두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펼쳤을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더 깊은 사유의 샘으로 우리를 이끄는 살아있는 텍스트입니다. 한 번 읽고 기억에서 사라진다면, 그 누구도 두껍고 어려운 고전을 다시 손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꺼이 그 수고로움을 감수합니다. 고전만이 가진 불멸의 매력, 그것이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곁에 살아남은 이유일 것입니다.
왜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일리아스’를 다시 읽으며 ‘고전이 왜 살아남는가’에 대한 답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삶의 근원적인 질문들이 담겨 있습니다. 고전 책 읽기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혼란스러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굳건한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일리아스’ 속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는 3천 년 전의 신화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분노, 슬픔, 사랑, 질투, 명예욕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며, 역사는 돌고 돈다는 진리를 우리는 고전을 통해 배웁니다.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야 하는 이유, 타인을 시기하지 않고 함부로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한 권의 고전은 때로 수십 권의 자기계발서보다 더 강력한 삶의 교훈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일리아스’의 심장을 관통하는 장면: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
‘일리아스’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제 가슴을 가장 뜨겁게 울린 장면은 단연 트로이의 늙은 왕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적장 아킬레우스를 찾아가는 대목입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존엄성과 슬픔, 그리고 용서와 화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 프리아모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자 트로이의 위대한 영웅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의 손에 죽고, 그의 시신은 무참히 훼손됩니다. 절망의 나락에 빠진 늙은 왕 프리아모스는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신의 도움에 의지해 홀로 아카이오이족의 진영으로 향합니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되찾기 위해 아들을 죽인 원수 앞에 무릎을 꿇는 길을 택합니다.
“신과 같은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하시오! 나와 동년배이며 슬픈 노령의 문턱에 접어든 그대 아버지를… (중략)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오. 드넓은 트로이아에서 나는 가장 훌륭한 아들들을 낳았건만 그중 한 명도 남지 않았으니 말이오… (중략) 나는 세상 어떤 사람도 차마 못 할 짓을 하고 있지 않소! 내 자식들을 죽인 사람의 얼굴에 손을 내밀고 있으니 말이오.“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를 ‘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역시 한 사람의 ‘아들’임을 상기시킵니다. 자신의 처지를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에게 투영하며,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과 자식을 둔 아버지의 마음을 연결하려 합니다. 왕으로서의 모든 권위와 자존심을 내려놓고, 오직 아들을 향한 애끓는 마음 하나로 원수의 손에 입을 맞추는 그의 모습은 고대나 현대나 변치 않는 부모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자아냅니다.
분노를 넘어선 공감, 아킬레우스
프리아모스의 간절한 호소는 ‘신과 같은’ 영웅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복수심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던 아킬레우스는 늙은 왕의 모습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그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며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프리아모스는 아들 헥토르를 위해서 울고,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때로는 파트로클로스를 위해 울었다.
이 눈물은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적과 나를 가르던 경계를 허물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는 공감의 눈물입니다. 아킬레우스는 더 이상 헥토르의 시신을 모욕하지 않습니다. 그는 신들이 헥토르의 시신을 온전히 보살펴왔음을 깨닫고, 프리아모스에게 시신을 정중히 내어줍니다. 나아가 헥토르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12일간의 휴전을 약속합니다. 이는 전쟁의 광기 속에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과 예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분노의 화신이었던 아킬레우스가 비로소 한 명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일리아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것
고전 책 읽기의 가치는 이처럼 시대를 초월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던지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일리아스’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 인간성의 본질: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은 인간의 가장 잔혹한 면모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프리아모스의 사랑, 아킬레우스의 연민과 같은 가장 숭고한 인간성을 피워내기도 합니다.
- 분노와 용서: 아킬레우스의 끝없는 분노는 결국 자기 파괴로 이어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리아모스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타인의 슬픔을 보듬고 분노를 내려놓음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얻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만연한 갈등과 혐오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합니다.
- 명예와 죽음: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불멸의 명예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결국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삶을 조명하며, 영광스러운 죽음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결론: 고전의 숲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지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의 두 번째 만남은 이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책장을 덮은 지금도 아킬레우스의 포효와 프리아모스의 눈물이 귓가에 맴도는 듯한 깊은 여운이 남습니다. 고전 책 읽기는 단순히 지식을 쌓는 행위를 넘어,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현재의 나를 성찰하고 미래를 살아갈 지혜를 얻는 과정입니다.
두껍고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고전 읽기를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용기를 내어 ‘일리아스’의 첫 장을 펼쳐보시길 권합니다. 그 장대한 서사시 속에서 여러분은 분명 삶의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