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불편한 질문, 왜 나쁜 사람이 더 잘 사는가?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이 씁쓸한 격언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정직하고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반대로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종종 무력감과 회의에 빠지곤 합니다. 이러한 불편한 현실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요? 편혜영 작가의 소설 『죽은 자로 하여금』은 이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서늘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나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생존하고 번성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정면으로 파고듭니다. 소설 속 인물 ‘이석’을 통해 우리는 왜 착한 사람은 버티기 힘든 사회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나쁜 사람이 살아남는 이유는 무엇인지 깊이 탐색해 볼 수 있습니다.
조직의 생존 논리: 윤리보다 충성을 원한다
소설의 중심인물 ‘이석’은 결코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병원이라는 조직 내의 온갖 비리와 부조리한 관행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때로는 그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갑니다. 조직의 입장에서 그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그의 생존 비결은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조직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충성심’에 있습니다.
반면, 병원의 비리를 외부에 고발한 내부고발자 ‘무주’는 어떻게 될까요? 그의 행동은 분명 정의롭고 윤리적이지만, 조직에게 그는 가장 위험하고 불편한 존재가 됩니다. 조직의 안정과 이익을 뒤흔드는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 조직의 우선순위: 대부분의 조직은 윤리적 가치나 사회적 정의보다 조직 자체의 생존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 충성스러운 인재상: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사람보다, 문제를 조용히 덮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사람이 조직에 필요한 ‘인재’로 평가받기 쉽습니다.
- 내부고발자의 운명: 정의를 위해 목소리를 낸 개인은 조직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고립되거나 보복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착한 사람은 버티기 힘든 사회의 단면은 바로 이 조직의 생존 논리에서 시작됩니다. 조직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양심적인 개인보다, 조직의 비밀을 지켜줄 충성스러운 공범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이석은 바로 이 점을 간파하고 조직의 비호 아래 살아남는 것입니다.
시스템의 역설: 문제를 숨기는 자가 승리한다
『죽은 자로 하여금』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뼈아픈 현실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보다 그것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시스템 내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무주의 내부고발은 시스템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지만, 시스템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제거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왜 시스템은 자정 능력을 상실하는가?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속성을 가집니다. 변화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과 비용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키는 내부고발자는 환영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석처럼 문제를 ‘처리’하고 ‘정리’하여 시스템의 외관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인물이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그는 썩어가는 부분을 도려내는 외과의사가 아니라, 상처 위에 반창고를 덧붙여 감추는 처치사에 가깝습니다. 조직은 당장의 안정을 위해 이런 임시방편을 더 선호하는 모순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죠. 이는 비단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수많은 기업과 사회 조직에서 비리를 고발한 사람들이 겪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결국 시스템은 정의로운 개인을 보호하지 않으며, 때로는 시스템 자체가 개인을 악의 길로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양심을 지키려는 개인의 노력은 무모한 저항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인 구조
이 소설이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인물들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나누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내부고발자 무주는 마냥 정의롭기만 한 영웅이 아니며, 비리의 중심에 선 이석 역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독자는 이들을 보며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를 옹호해야 할지 혼란에 빠집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특정 개인의 사악한 본성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평범한 개인을 악의 조력자로 만들고,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구조적 모순’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석이 저지른 잘못은 분명하지만, 그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몬 것은 조직의 압력과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석을 비난하면서도, 만약 우리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불편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착한 사람은 버티기 힘든 사회가 가진 가장 교묘하고 강력한 함정입니다. 개인의 양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만, 정작 그 양심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구조는 외면하는 것입니다.
몰락한 도시가 만든 생존 방식
소설의 배경이 되는 조선업이 몰락한 지방 도시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한때는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이제는 쇠락해버린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윤리나 정의가 아닌 ‘생존’ 그 자체입니다. 좋은 일자리는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치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이런 절박한 환경은 조직의 비윤리적인 관행을 더욱 공고히 만듭니다. ‘나 하나쯤 목소리를 낸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괜히 나섰다가 나만 다치지’ 와 같은 체념과 냉소가 팽배해집니다. 생존이 최우선 과제가 된 사회에서는 도덕적 가치가 쉽게 무시될 수 있습니다. 작가는 이 배경을 통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사람이 나빠지는 것이 오직 개인의 성정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내모는 사회 구조와 환경 때문일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결론: 문제는 사람인가, 구조인가?
소설의 결말에서 이석은 결국 비리 문제로 고발당하지만, 이야기는 그가 완전히 몰락했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가 또다시 구조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기죠. 이 열린 결말은 우리에게 더 큰 질문을 남깁니다. 한 명의 ‘나쁜 사람’을 처벌한다고 해서 과연 이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 다른 이석이 나타나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까요?
『죽은 자로 하여금』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모순을 직시하게 합니다. 왜 착한 사람은 버티기 힘든 사회가 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많아서’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성공하고, 문제를 덮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 시스템과 조직 문화에 그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 소설을 덮고 난 후,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개인의 양심에만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 선택은 우리 모두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