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남을 쫓는 삶, 돌멩이를 줍는 것과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 속 화려한 삶, 나보다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동료,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보며 불안과 조급함에 휩싸입니다.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지만, 마음속 갈증은 쉬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한국의 지성이자 시대의 스승, 故 이어령 교수님은 이러한 삶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남겼습니다.
“남 쫓아가는 욕망은 물독도 두레박도 아니고 돌멩이라네. 아름답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그 갈증을 자기 안에서 만들어내지 못하면 돌멩이처럼 되는 거야.”
이 말씀은 타인을 모방하는 삶 속에서는 결코 진정한 만족을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의미와 갈증 해소의 샘물은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있다는 깊은 통찰입니다. 김지수 기자가 이어령 교수님과의 마지막 1년간의 대화를 기록한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는 이처럼 우리 삶의 방향을 되짚어보게 하는 지혜가 가득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이어령 교수가 말한 ‘인생에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 5가지를 깊이 있게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인문학적 사고 – 인간을 이해하는 힘
첫 번째 가르침은 바로 ‘인문학적 사고’의 중요성입니다. 많은 이들이 인문학을 교양이나 장식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어령 교수님의 생각은 단호히 달랐습니다.
“과학 하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경제하는 사람이 문학을 알아야 해. 교양으로 인문학 하라는 게 아니야. 인문학은 액세서리가 아니라네.”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시대에 왜 인문학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사람’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방대한 지식을 갖추었더라도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없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인문학, 세상을 읽는 기본 언어
인문학은 인간의 희로애락, 욕망, 관계, 사회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즉,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언어’와도 같습니다. 이 언어를 모르면 우리는 현상의 겉모습만 볼 뿐, 그 이면에 숨겨진 본질과 맥락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고객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경제인,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정치인,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 모두에게 인간에 대한 이해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인문학적 소양 없이는 어떤 분야에서도 깊이 있는 통찰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음을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2. ‘떼’가 아닌 ‘유일한 존재’로 사는 것
두 번째 가르침은 ‘개인으로서의 고유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무리에 속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정감을 느끼고 싶고,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다수가 선택하는 길을 무비판적으로 따라가곤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건 ‘떼’로 사는 거라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지. 그게 어떻게 인간인가? … 인간이면 언어를 가졌고, 이름을 가졌고, 지문을 가졌어. 그게 바로 only one이야. 무지 중의 ‘그놈이 그놈’이 아니라 유일한 놈이라는 거지.”
교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 각자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줍니다. 세상에 똑같은 지문이 존재하지 않듯, 우리 각자는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이름, 언어, 생각, 감정 모든 것이 나만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고 ‘떼’의 논리에 자신을 맡겨버립니다. 남들이 하니까, 그게 정답처럼 보이니까, 튀고 싶지 않으니까. 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고유성을 갉아먹고, 결국 ‘그놈이 그놈’인 무리의 일부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인간다운 삶은 남을 따라가는 모방의 삶이 아니라, 조금 서툴고 외롭더라도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창조의 삶 속에 있습니다.
3. 관심에서 관찰로, 그리고 관계로
세 번째는 인생의 단계에 따라 변화하는 시선과 그 끝에 남는 ‘관계’의 소중함입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인생의 흐름을 세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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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 관심(Interest)
- 젊음의 특권은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관심’입니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끊임없이 마음이 움직입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세상을 넓게 경험하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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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 관찰(Observation)
- 사오십 대가 되면 비로소 ‘관찰’의 눈이 뜨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관심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시선이 생깁니다. 사물과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지혜가 쌓이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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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 관계(Relationship)
- 그리고 나이가 들면 결국 우리 곁에 남는 것은 ‘관계’입니다. 수많은 관심과 관찰을 거쳐 맺어진 깊고 진실한 관계만이 마지막을 함께합니다.
“젊었을 때는 관심이 최우선이었어. 사오십 대가 되니 관찰을 알겠더군. 늙어지니 관계가 남아. 관계가 생기려면 여러 대상을 한꺼번에 기웃거리면 안 돼.”
진정한 관계는 수많은 사람과 얕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에 대한 깊은 관찰과 애정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이 결국 사람과의 관계임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지금 누구를, 무엇을 깊이 ‘관찰’해야 할지 돌아보게 됩니다.
4. 외로움을 통해 자신을 만나는 것
네 번째 가르침은 우리가 흔히 피하고 싶어 하는 ‘외로움’의 가치에 대한 것입니다. 현대 사회는 외로움을 병처럼 취급하지만, 이어령 교수님은 외로움을 자신과 만나는 신성한 시간으로 여겼습니다.
“외로워보지 못한 사람, 내가 혼자라는 걸 느껴보지 못한 사람과는 대화해도 소용이 없다네. 외로움 속에서 자족을 배운 군자가 있기에, 세상의 가르침과 배움이 있는 거지.”
혼자 있는 시간은 결코 고통이나 결핍의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는 외로움 속에서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스스로 만족하는 법(자족)을 배우게 됩니다. 상처받은 예술가들이 그 상처를 끌어안고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듯, 외로움은 우리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창조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5. 끝까지 꿈을 말할 수 있는 삶
마지막으로, 이어령 교수님은 ‘꿈’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어야 할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집이 아니라 길 자체를 목적으로 삼게나… 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걸 지속하는 거야. 꿈 깨면 죽는 거야.”
이 말씀은 삶의 본질이 목적지 도착이 아니라,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 자체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꿈이 있다는 것은 삶의 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꿈을 이루고 난 뒤 허무함에 빠지는 이유는, 길 위에서의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결과에만 집착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죽고 나서도 할 말을 남기는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 말을 잃는 사람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가?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거라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꿈과 이야기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며, 행복한 사람이라는 교수님의 마지막 고백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결론: 당신의 샘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어령 교수가 말한 ‘인생에서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 5가지는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됩니다. 인생은 남을 따라가는 경주가 아니라, 자기 안에서 고유한 의미를 만들어가는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인문학으로 인간을 이해하고, 유일한 존재로서 나만의 길을 가며, 깊은 관찰로 진정한 관계를 맺고, 외로움 속에서 나를 만나며, 마지막 순간까지 꿈을 이야기하는 삶. 이것이 바로 이어령 교수님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수업의 핵심입니다. 남을 쫓는 욕망이라는 ‘돌멩이’를 내려놓고, 이제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는 ‘샘’을 파야 할 때입니다. 그곳에서만이 삶의 진정한 갈증을 채워줄 시원한 물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