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두 기둥, 한화의 과감한 선택
2023시즌, 7년 만의 가을야구 진출이라는 달콤한 꿈을 꿨던 한화 이글스. 그 중심에는 철벽 불펜을 자랑하던 투수 한승혁과 김범수가 있었습니다. 두 선수는 나란히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팀의 뒷문을 든든하게 지켰습니다. 한승혁은 71경기에 등판해 3승 3패 3세이브 16홀드, 평균자책점 2.25를, 김범수는 73경기에서 2승 1패 2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하며 필승조의 핵심으로 활약했습니다. 하지만 영광의 순간은 짧았습니다. 스토브리그가 시작되자 한화는 예상 밖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FA로 영입한 강백호의 보상선수로 한승혁을 kt 위즈에 내줬고, FA 자격을 얻은 김범수는 KIA 타이거즈와 3년 20억 원에 계약하며 팀을 떠났습니다.
한 시즌에 팀의 핵심 불펜 투수 두 명을 동시에 떠나보낸다는 것은 엄청난 도박입니다. 팬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커졌지만, 한화 구단은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우완 강속구 투수 한승혁의 공백은 박상원 등이, 좌완 파이어볼러 김범수의 빈자리는 ‘특급 신인’ 황준서와 조동욱 등이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와 현재의 안정을 맞바꾼 한화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요? 모든 평가는 시즌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그 시작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신인, 황준서의 혹독한 신고식
한화 이글스가 202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지명한 황준서. 당시 최대어로 꼽히던 우완 김택연(두산)을 거르고 선택했을 만큼, 구단이 그에게 거는 기대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귀한 좌완 파이어볼러라는 희소성과 선발과 구원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잠재력은 팀의 미래를 책임질 재목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초 선발 자원으로 고려되었으나, 팀 사정상 올 시즌에는 작년 김범수가 맡았던 필승조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요. 황준서는 2월 21일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WBC 대표팀과의 연습 경기에서 혹독한 프로의 맛을 봤습니다. 팀이 2-2로 팽팽하게 맞선 7회 초, 마운드에 오른 그는 시작부터 흔들렸습니다. 선두타자 문현빈에게 볼넷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김형준에게 연달아 볼넷을 허용하며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이날 양 팀을 통틀어 나온 첫 볼넷이 모두 황준서의 손에서 나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결국 위기 상황에서 NC 김주원에게 뼈아픈 3점 홈런을 허용했고, 이후 안현민에게 또다시 볼넷을 내주며 무너졌습니다. 최종 성적은 1이닝 1피안타(홈런) 3볼넷 3실점. 최고 구속 145km의 위력적인 공을 가졌음에도 제구가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단 한 경기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팀의 핵심 불펜 역할을 맡아야 할 신인의 첫 등판 내용으로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제구 난조, 단순한 성장통일까? 위험 신호일까?
이날 황준서의 투구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피홈런이 아닌 ‘3개의 볼넷’이었습니다. 프로 무대, 특히 승패가 갈리는 중요한 순간에 등판하는 불펜 투수에게 제구력은 생명과도 같습니다. 볼넷은 주자를 쌓이게 할 뿐만 아니라 투구 수를 늘리고, 야수들의 수비 집중력까지 흐트러뜨리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황준서는 총 37개의 공을 던졌는데, 이 중 스트라이크는 20개에 불과했습니다. 패스트볼, 포크볼, 슬라이더, 커브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했지만,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지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이는 한승혁과 김범수를 떠나보낸 한화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결과였습니다. 과연 한화의 불펜은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요? 불펜 붕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방망이로 던진 승부수, 마운드가 버텨줄까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화는 올 시즌 타선 보강에 힘쓰며 ‘공격 야구’를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마운드가 안정되지 않으면 아무리 강력한 방망이라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경기 후반을 책임지는 불펜의 안정성은 강팀의 필수 조건입니다. 지난해 7년 만에 가을야구 무대를 밟으며 팬들에게 희망을 안겼던 한화가 올해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불펜 재건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한승혁과 김범수라는 검증된 카드를 포기하고 황준서라는 ‘미래’에 베팅한 한화의 선택은 아직 실패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황준서는 분명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유망주이며, 이번 경험을 발판 삼아 더 크게 성장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시즌 초반부터 불펜이 흔들린다면 팀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불펜 붕괴는 단순한 몇 점의 실점을 넘어 팀의 시즌 전체 농사를 망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험 요소입니다. 과연 한화는 이 불안한 출발을 딛고 안정적인 불펜을 구축할 수 있을까요? 황준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와 우려를 이겨내고 한화 불펜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팬들의 시선이 마운드로 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