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구단 타이거즈의 유일한 아킬레스건, 포수
한국시리즈 통산 12회 우승. KBO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을 꼽으라면 단연 ‘타이거즈’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해태 시절부터 KIA에 이르기까지, 타이거즈 왕조는 수많은 우승 트로피만큼이나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해왔습니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 바람의 아들 이종범과 같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레전드들은 물론, 투타 모든 포지션에 리그를 호령했던 선수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들의 이름만으로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 역사가 그려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역사 속에서도 유독 아쉬움을 남기는 포지션이 있었으니, 바로 ‘안방마님’이라 불리는 포수 자리입니다. 특히 ‘거포 포수’의 계보는 거의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습니다. 타이거즈의 팬들이라면 누구나 강한 어깨와 안정적인 수비, 그리고 클러치 상황에서 한 방을 터뜨려 줄 수 있는 공격형 포수에 대한 갈증을 느껴왔을 것입니다. 수많은 레전드 속에서 유독 타이거즈 포수의 이름은 희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타이거즈 안방의 역사: 수비형 포수들의 시대
타이거즈의 포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시작부터 공격보다는 수비에 중점을 둔 선수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 원년(1982년): 박전섭과 김경훈이 번갈아 마스크를 썼습니다.
- 왕조의 시작(1983년~): 재일동포 출신 김무종이 안방을 차지하며 1988년까지 6년간 활약했습니다. 그는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한 핵심 멤버였지만, 그의 진가는 타격보다는 투수 리드와 안정적인 수비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막강했던 투수진을 이끄는 데 집중했던,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였습니다.
이처럼 타이거즈는 초창기부터 강력한 투수진의 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포수진을 운영했습니다. 이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공격적인 포수의 부재라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유일한 거포의 기억, ‘무선전화기 사나이’ 장채근
타이거즈의 밋밋했던 포수 타선에 혜성처럼 등장한 선수가 바로 ‘장채근’입니다. 선동열의 송정동초등학교 1년 후배이기도 한 그는 1986년 입단하여 1995년까지 10년간 타이거즈의 안방을 지켰습니다. 그의 통산 타율은 0.228로 높지 않았지만, 팬들은 그의 낮은 타율보다 홈런 개수에 열광했습니다.
장채근은 타이거즈 역사상 유일하게 한 시즌 20홈런을 두 번이나 기록한 포수입니다.
- 1988년: 26홈런 (팀 동료 김성한의 30홈런에 이은 리그 2위)
- 1992년: 23홈런
당시 홈구장이었던 광주 무등경기장에는 특정 구역으로 홈런을 치면 무선전화기를 경품으로 주는 ‘무선전화기 존’이 있었습니다. 장채근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그곳으로 홈런을 쏘아 올렸고, 수많은 무선전화기를 부상으로 받았습니다. 그에게 ‘무선전화기 자판기’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입니다. 재미있는 일화는, 인심 좋은 그가 경품으로 받은 전화기를 모두 구단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느라 정작 자신의 집에는 한 대도 가져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는 그의 시원한 홈런만큼이나 팬들의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장채근의 1992년 23홈런은 타이거즈 역사상 마지막 ‘포수 20홈런’ 기록으로 30년 넘게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얼마나 독보적인 존재였는지를 증명하는 기록입니다.
장채근 이후의 긴 침묵, 그리고 새로운 희망
장채근이 떠난 이후, 타이거즈의 안방은 정회열, 최해식, 그리고 2009년 우승의 주역이었던 김상훈을 거쳐 현재의 김태군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팀에 헌신했지만, 아쉽게도 장채근과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2022년 트레이드로 잠시 KIA 유니폼을 입었던 박동원이 18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20홈런에 가장 근접했지만, 기록 달성에는 실패하고 팀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기다림 속에 팬들의 갈증이 깊어질 무렵, 새로운 희망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바로 젊은 포수 ‘한준수’입니다. 2024 시즌을 앞두고 일본 스프링캠프에서 이범호 신임 감독은 한준수에 대한 폭발적인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한준수가 풀타임 주전으로 뛴다면 한 시즌에 홈런 20개에서 25개는 충분히 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이는 단순한 덕담이 아닌, 그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에 찬 평가였습니다. KBO 리그에서 포수 25홈런은 박경완, 양의지, 강민호 등 역대급 포수들에게만 허락된 매우 높은 경지입니다. 이범호 감독의 발언이 얼마나 큰 기대감을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흥미롭게도 한준수는 거포의 전설 장채근이 졸업한 광주 동성고(구 광주상고) 36년 후배이기도 합니다. 마치 운명처럼 선배의 길을 이을 후배가 등장한 셈입니다.
과연 한준수는 이범호 감독과 팬들의 기대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요? 만약 그가 20홈런 고지를 밟는다면, 이는 1992년 장채근 이후 무려 34년 만에 터지는 타이거즈 포수의 20홈런이 됩니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타이거즈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입니다. 2024 시즌, 한준수의 방망이에 타이거즈 팬들의 모든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