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타이거즈의 유일한 아쉬움, ‘거포 포수’의 부재
한국시리즈 통산 12회 우승. KBO 리그 역사상 가장 빛나는 왕조를 구축했던 해태 타이거즈, 그리고 그 명맥을 잇는 KIA 타이거즈. ‘국보급 투수’ 선동열, ‘바람의 아들’ 이종범을 비롯해 수많은 레전드를 배출하며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써 내려온 명문 구단입니다. 투수진과 타선 곳곳에 리그를 호령했던 스타들이 즐비했지만, 유독 한 포지션에서는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바로 팀의 안방을 책임지는 ‘타이거즈 포수’ 자리, 특히 공격력을 갖춘 거포 포수의 부재는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왕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타이거즈의 마스크를 쓴 선수들은 많았지만 팬들의 뇌리에 ‘공격형 포수’로 각인된 이는 단 한 명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30년이 훌쩍 넘는 긴 기다림 끝에 그 계보를 이을 재목이 나타났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타이거즈 안방의 역사: 수비는 빛났지만 공격은 아쉬웠다
타이거즈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안방을 지킨 포수들은 대부분 수비에 강점을 보였습니다. 1982년 원년 멤버 박전섭과 김경훈을 시작으로, 1983년부터 6년간 활약하며 4번의 우승에 기여한 재일동포 김무종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안정적인 투수 리드와 수비력으로 왕조의 주춧돌 역할을 했지만, 공격에서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김무종 이후에도 정회열, 최해식, 그리고 2009년 V10의 주역인 김상훈 등 훌륭한 포수들이 타이거즈의 안방을 지켰습니다. 이들 모두 안정적인 수비력으로 팀에 공헌했지만, 타선에 무게감을 더해줄 ‘홈런 치는 포수’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현대 야구에서 포수의 공격력이 점점 중요해지는 흐름 속에서 타이거즈 팬들의 갈증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유일한 예외, ‘무선전화기 사냥꾼’ 장채근
이 기나긴 타이거즈 포수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거포가 바로 장채근입니다. 선동열의 송정동초등학교 1년 후배이기도 한 그는 1986년 입단해 1995년까지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활약했습니다. 통산 타율은 0.228로 높지 않았지만, 그의 방망이는 결정적인 순간 불을 뿜었습니다. 통산 97개의 홈런은 그의 파워를 증명합니다.
특히 장채근은 타이거즈 역사상 유일하게 한 시즌 20홈런을 두 번이나 기록한 포수입니다. 1988년에는 무려 26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리그 홈런 2위에 올랐고, 1992년에도 23개의 아치를 그려냈습니다. 당시 홈구장이었던 광주 무등경기장 외야 펜스에는 특정 구역으로 홈런을 치면 무선전화기를 경품으로 주는 ‘무선전화기 존’이 있었습니다. 장채근은 귀신같이 그곳으로 홈런을 쏘아 올려 수많은 무선전화기를 받았다는 일화는 지금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회자됩니다. 인심 좋은 그는 경품을 모두 구단 직원들에게 나누어주어 정작 자신의 집에는 한 대도 가져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장채근은 실력과 인성을 모두 갖춘, 타이거즈 팬들이 사랑한 진정한 ‘거포 포수’였습니다.
34년의 기다림, 새로운 희망 한준수의 등장
1992년 장채근 이후, 타이거즈의 어떤 포수도 20홈런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2022년 트레이드로 합류했던 박동원(現 LG)이 18홈런을 기록하며 가장 근접했지만, 아쉽게 대기록 달성에는 실패했습니다. 김태군이 주전으로 활약하는 현재, 팬들의 시선은 그의 뒤를 이을 젊은 피, 한준수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에 불을 지핀 것은 다름 아닌 이범호 신임 감독의 발언이었습니다. 이범호 감독은 일본 스프링캠프에서 “공격형 포수 한준수가 한 시즌 풀타임을 소화한다면 홈런 20개에서 25개는 충분히 칠 수 있다”고 장담하며 엄청난 신뢰를 보였습니다. 한준수의 한 시즌 개인 최다 홈런이 7개(2023년)인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예측이지만, 그의 잠재력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설의 뒤를 잇는 ‘동성고 후배’

한 시즌 25홈런은 KBO 역사에서도 박경완, 양의지, 강민호 등 손에 꼽는 레전드 포수들만이 밟아본 고지입니다. 이범호 감독의 기대가 현실이 된다면, 한준수는 단순히 팀의 주전 포수를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포수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준수가 바로 타이거즈의 마지막 20홈런 포수였던 장채근의 광주 동성고(舊 광주상고) 36년 후배라는 사실입니다. 대선배가 세운 위대한 기록을 까마득한 후배가 34년 만에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서사는 팬들의 가슴을 더욱 뛰게 만듭니다. 수비가 좋은 김태군, 주효상과 함께 안방을 책임질 한준수가 과연 감독의 믿음과 팬들의 오랜 염원에 부응할 수 있을까요?
2024시즌, 우리는 3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타이거즈의 ‘거포 타이거즈 포수‘ 계보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장채근의 후예, 한준수의 방망이에 모든 타이거즈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