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의 전설, 타이거즈의 유산을 잇는 지도자들
1983년 일본 시코쿠, 앳된 얼굴의 해태 타이거즈 선수들이 훈련 후 시내를 달리는 흑백 사진 한 장은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백기성 코치와 이상윤 선수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는 강한 훈련의 열기는 그해 창단 첫 우승이라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시리즈 통산 12회 우승에 빛나는 명문 구단 해태-KIA 타이거즈. 한국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이 ‘호랑이 군단’에서 5년 이상 선수로 활약한 이들 중 과연 몇 명이나 감독의 자리에 올랐을까요? 지난해 NC 다이노스 사령탑에 선임된 이호준 감독을 포함해 총 7명의 인물이 타이거즈의 DNA를 품고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그들의 영광과 도전의 역사를 따라가 봅니다.
1호 감독의 탄생: 서정환과 김성한
타이거즈 출신 감독의 역사는 1998년 서정환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의 지휘봉을 잡으며 시작되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드 1호’라는 상징적인 타이틀을 가진 그는 해태에서 선수와 코치로 활약한 뒤,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가 코치를 거쳐 감독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1999년까지 2년간 삼성을 이끈 그는 2006년에는 다시 KIA 타이거즈의 사령탑에 앉아 2년간 팀을 지휘했습니다. 서정환 감독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두 팀(삼성, 해태-KIA)에서 선수-코치-감독을 모두 경험한 진기록의 소유자로, 타이거즈 출신 감독의 서막을 연 인물입니다.
그 뒤를 이은 2호 감독은 ‘오리궁둥이’로 유명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김성한 감독입니다. 김응용 감독의 뒤를 이어 2001년 제2대 해태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2004년 7월까지 3시즌 반 동안 팀을 이끌었습니다. 해태에서 KIA로 팀 이름이 바뀌는 과도기를 책임졌던 그는 타이거즈의 정체성을 지키며 팀을 지휘했습니다. 비록 2004년 7월 총감독으로 물러난 이후 현장 복귀가 쉽지 않았지만,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를 맡았을 때 수석코치로 합류하며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해태 동기의 엇갈린 길: 이순철과 선동열

김성한 감독의 뒤를 이어 타이거즈 출신 감독 계보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이순철 감독입니다. 그는 2004년 LG 트윈스의 사령탑에 앉아 2006년 6월까지 약 2년 반 동안 팀을 이끌었습니다. 비록 해태 동기인 선동열보다 먼저 감독직에 올랐지만, 2006년 자진 사퇴 이후로는 아쉽게도 감독으로서의 기회를 다시 잡지 못했습니다. ‘적토마’라 불리던 현역 시절의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지도자의 길을 걸었으나, 그의 감독 커리어는 비교적 짧게 마무리되었습니다.
반면, 그의 동기이자 국보급 투수였던 선동열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화려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2010년까지 6년간 ‘선 파워’를 과시하며 정규시즌 우승 2회, 한국시리즈 우승 2회, 준우승 1회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강력한 불펜 야구를 앞세운 그의 ‘지키는 야구’는 삼성 왕조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후 2012년 고향 팀 KIA 타이거즈로 돌아와 3년간 팀을 이끌었지만, 아쉽게도 삼성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 6년, KIA 3년을 더해 총 9년간 감독직을 수행한 그는 7명의 타이거즈 출신 감독 중 최장수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형 레전드: 이강철, 김종국, 그리고 이호준
선동열 감독의 광주일고-해태 4년 후배인 이강철 감독은 현재 진행형 레전드입니다. 2019년 KT 위즈의 제3대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올해로 8년째 팀을 이끌며 신생팀을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창단 첫 5할 승률(2019),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2020), 그리고 감격의 창단 첫 통합 우승(2021) 등 KT의 모든 ‘최초’의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5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위업 또한 그의 작품입니다. 중단 없이 8년째 한 팀을 지휘하고 있는 그는 해태 왕조를 18년간 이끈 김응용 감독에 이어 역대 타이거즈 감독 중 연속 시즌 2위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재계약에 성공할 경우 타이거즈 선수 출신 감독 최장수 기록을 경신하게 됩니다.
이강철 감독의 배턴은 광주일고 7년 후배인 김종국 감독이 이어받았습니다. 2022년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선임된 그는 2023년까지 팀을 이끌며 타이거즈의 명가 재건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가장 최근에 감독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바로 이호준 감독입니다.
1994년 해태에 투수로 입단했지만 타자로 전향해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성장한 이호준 감독은 파란만장한 선수 생활을 보냈습니다.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로의 트레이드는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은퇴 후 코치 경험을 쌓은 그는 2025시즌을 앞두고 NC 다이노스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여, 모두의 예상을 깨고 팀을 5강으로 이끄는 지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선수 시절의 경험과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감독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호랑이 DNA, 그라운드의 리더로 이어지다
서정환, 김성한, 이순철, 선동열, 이강철, 김종국, 이호준. 이들 7명의 해태-KIA 선수 출신 감독들은 KBO 리그의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겼거나, 현재도 남기고 있습니다. 최강의 팀에서 승리의 경험을 체득한 ‘호랑이 DNA’는 그들을 그라운드 밖 지휘관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들의 리더십 스타일과 야구 철학은 각기 다르지만, 타이거즈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앞으로 또 어떤 타이거즈 출신 레전드가 이들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고 KBO 리그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지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