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사재인 성사재천: 비운의 명장 김경문, 한화 이글스와 함께 마지막 우승 도전에 나서다

50년의 세월을 넘어 돌아온 명장, 김경문

50년의 세월을 넘어 돌아온 명장, 김경문

1977년, 앳된 얼굴의 공주고 포수 김경문이 동료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훗날 자신이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명장이 되리라고, 그리고 그 이름 앞에 늘 ‘준우승’이라는 아쉬운 수식어가 따라붙으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로부터 약 50년의 세월이 흐른 2024년, 백전노장 김경문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지휘봉을 잡고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그의 귀환은 단순한 감독 선임을 넘어, KBO 리그에 묵직한 드라마의 새로운 장을 예고하는 사건이다.

김경문 감독은 통산 1700경기에 나서 896승 30무 774패를 기록한, 의심의 여지 없는 명장이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이력에는 유독 ‘우승’이라는 단어만 빠져있다.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를 이끌고 네 차례나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지만, 번번이 마지막 한 걸음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머물렀다. 팬들은 그에게 ‘콩경문’이라는 별명을 붙이며 안타까워했고, 그는 ‘비운의 명장’으로 불렸다. 이제 그는 선수단 리빌딩의 기틀을 마련하고 도약을 꿈꾸는 한화 이글스와 함께 그의 야구 인생 마지막 퍼즐, ‘우승’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꽃미남 포수에서 카리스마 사령탑으로

꽃미남 포수에서 카리스마 사령탑으로

선수 시절의 김경문

프로야구 초창기 OB 베어스 팬북에 실린 20대 중반의 김경문은 ‘꽃미남’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훈훈한 외모를 자랑했다. 포수라는 포지션은 그라운드의 야전사령관이라 불린다. 투수를 리드하고, 수비 위치를 조율하며, 경기 전체의 흐름을 읽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자리다. 그의 선수 시절 경험은 훗날 감독 김경문이 보여줄 섬세하고 대담한 리더십의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은퇴를 앞둔 베테랑 시절, 2년 차 신예 포수였던 김태형(전 두산 감독)과 함께한 시간은 훗날 한국시리즈에서 감독 대 감독으로 만나는 드라마틱한 서사의 씨앗이 되었다.

명장의 탄생: 두산 베어스 시절 (2004~2011)

2004년, 김인식 감독의 뒤를 이어 두산 베어스의 사령탑에 오른 김경문 감독은 ‘화수분 야구’의 기틀을 닦으며 팀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그의 지도 아래 수많은 유망주들이 스타 플레이어로 성장했고, 두산은 매년 우승을 노리는 가을야구 단골손님이 되었다. 하지만 영광의 문턱에서 좌절은 반복되었다.

  • 2005년 한국시리즈: 고려대 3년 후배인 ‘국보급 투수’ 출신 선동열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에 패배.
  • 2007년, 2008년 한국시리즈: OB 시절 은사였던 ‘야신’ 김성근 감독의 SK 와이번스에 2년 연속 무릎을 꿇었다.

세 번의 한국시리즈 진출, 그리고 세 번의 준우승. 정규시즌의 압도적인 모습은 단기전의 벽 앞에서 번번이 힘을 잃었다. 이 시기부터 김경문 감독에게는 ‘우승 청부사’가 아닌 ‘비운의 명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신생팀을 정상으로 이끈 도전: NC 다이노스 시절 (2011~2018)

신생팀을 정상으로 이끈 도전: NC 다이노스 시절 (2011~2018)

2011년 8월, 김경문 감독은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창단 감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허허벌판에서 팀을 만들어가는 고된 과정이었지만, 그의 리더십 아래 NC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2013년 1군 리그에 처음 참가한 NC는 불과 4년 만인 2016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하지만 운명은 또다시 그에게 잔인했다.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상대는 하필 그가 키워낸 친정팀 두산 베어스였고, 상대 팀 감독은 그의 애제자였던 김태형이었다. 결과는 4전 전패. 스승은 제자 앞에서 또다시 준우승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2016년 11월 2일, 4차전이 끝난 마산구장에서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스승 김경문의 뒤를 쫓아와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김태형 감독의 모습은 KBO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록되었다. 영광과 좌절이 교차하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순간이었다.

돌아온 명장,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돌아온 명장,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한화 이글스의 희망이 된 김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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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NC를 떠났던 김경문 감독은 한동안 야인으로 지냈다. 60세를 훌쩍 넘긴 나이, 많은 이들이 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024년 6월,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화 이글스의 유니폼을 입으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리빌딩의 터널을 지나고 있던 한화에게는 그의 경험과 카리스마, 선수단을 하나로 묶는 리더십이 절실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흰색 바람막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두산과 NC 시절, 백발과 어우러진 그의 흰색 바람막이는 ‘미중년’ 감독의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한화의 상징색인 주황색을 받아들인 것은 어쩌면 과거의 아쉬움을 모두 털어내고 새로운 팀에서 반드시 우승을 이루겠다는 그의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중국 역사상 최고의 지략가로 꼽히는 제갈공명은 말했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 일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김경문 감독의 야구 인생은 이 말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을 도모(謀事)해왔다. 선수를 발굴하고, 팀을 만들고, 수차례 정상의 문턱까지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마지막 성공(成事)은 늘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이제 감독 18년 차, 김경문은 그의 야구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도전에 나선다. 한화의 전력은 객관적으로 최강이라 불리기 어렵다. 하지만 야구는 전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노련한 명장의 지략과 선수들의 투지가 만들어낼 시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과연 하늘은 그의 마지막 도전에 응답할 것인가. 비운의 명장 김경문이 한화 이글스와 함께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